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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과 양경숙 교수는 국립국악원 정악단 악장과 해금연구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중요무형문화재 1호 종묘제례악 이수자이다.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해 국악의 전통을 이어왔으며, 선배 국악인으로서 다음 세대에 국악의 핵심을 전수하는 교육자로 국악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의 차분하고 정갈한 목소리를 통해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다듬어 온 음악과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 해왔던 해금, 국악 연주자로서의 삶, 그리고 연주를 통해 깨달은 것들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고자 했던 교육자로서의 삶까지.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처음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렇게 어렸을 적부터 전공을 시작한 편은 아니에요. 그 당시에는 국악중학교가 국악인을 키우는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는데 입학을 한 뒤 2년 동안은 음악 전반에 관한 이론과 지식을 배우고, 선생님들이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특징을 관찰하셔서 전공악기를 추천해주시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중학교 3학년부터 시작하게 되었네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제게 국악이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며 권해주셔서 당시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시험을 봤고, 시험을 봤는데 붙어서 다니게 되었어요(웃음).
연주자로서 활동하실 때와 교육자로서 활동하실 때 어떤 가치관에 초점을 두시는지 궁금합니다.
해금이 독주악기로 알려지고 해금연주자들이 솔리스트로 활동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오래도록 국악에서 해금은 독주악기보다는 합주악기로서의 역할을 맡아왔죠. 그래서 주로 연주단체에서 합주중심의 연주를 하면서도 개인 독주회 등의 여러 연주를 통해 해금연주자로서 해금의 역할과 가능성을 찾아왔던 것 같네요.
교육자로서는 내가 지나온 경험들을 학생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쌓아왔던 연주경험뿐만 아니라 나 또한 학생이었을 때 선생님들께 배웠던 것들이 한참이 지난 뒤에 깨달아진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 점들을 학생들에게 남김없이 전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으로서의 입장이 더 책임이 많죠. 연주자로서 학생들을 대할 때는 주관적인 의견을 많이 전달을 한 반면, 선생님으로서 대할 때는 좀 더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서 전하려고 애씁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당시와 지금의 학생들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많이 놀랐어요. 학교에 다닐 때에는 여러 학과가 함께 받는 수업이 많았어요. 그래서 많이 교류하지는 않아도 ‘저 사람이 우리학교 학생이구나’ 정도는 알고, 동아리 활동도 함께 하여 소속감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시 학교 교단으로 와보니 분반이 되어있더라구요.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같이 모여서 공부하면서 얻을 수 있는 교감이 있고, 거기서 배우는 것이 또 있거든요. 음악활동이라는 것은 넓게 보고 주변에서 자극을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는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학업 외적인 생활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공부에 연관된 것이 아니면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시간을 자신의 경력이나 실력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학교 생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이를 간과하고 있지는 않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떠한 계기와 뜻을 가지고서 교육자로서 처음 입문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교단에 서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던 것은 아니었어요. 2월 학부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1월부터 연주단체 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연주 생활과 연습에 충실한 시간을 보냈는데, 이 후 지적인 보충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어 석사과정을 시작했어요. 석사를 마치고 나서도 연주생활을 계속 이어갔는데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시기가 왔었습니다. 정체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고민을 하던 차에 이화여대에 처음으로 국악과 박사과정이 생기게 되어 그곳에서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그 나이에 굳이 박사를 다시 해야 하느냐고 반대를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누구도 제게 잘했다고 해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박사논문을 쓸 때도 주변의 반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박사과정을 마치자 은사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시면서 교단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마음가짐이 또 새롭게 달라지더군요. 여태까지 해왔던 연주 경험들을 학생들과 교단에서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도전해보지 않으면 후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죠. 그래서 학교로 오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처럼 연주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요즘에도 연주단체 생활이나 육아를 하다가 다시 학업을 시작하고 싶은 학생들이 와서 고민상담을 하곤합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반드시 어떤 지위에 도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해야 하는지, 도달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더라구요. 물론 목표를 가진다고 해서 모두가 다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학교를 다니며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는 자체가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공부하고 싶다는 것은 무엇인가 갈증을 채우고 싶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결과를 생각하기보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음악 교육을 위해 어떤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제 욕심 같아서는 국악전담 교사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적으로는 공교육에서 국악전담 교사와 서양음악전담 교사가 함께 교육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지금이 글로벌 시대라고 이야기하죠. 외국인들도 새로운 것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장 한국적인 것을 배우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인재상에도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하거나 외국인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 학생들이 한국 전통악기를 하나씩 연주할 수 있다면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은퇴 후에는 어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졸업도 하기 전에 연주생활을 시작했고, 벌써 40년이 흘렀습니다. 지나고 보니 너무 쉼이 없이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온전히 나를 위한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원래는 9월부터 긴 여행을 예약해놓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다 취소가 되었네요. 주어지는 상황에 맞게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앞으로 국악의 미래를 위해서 국악인들에게 전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작년에 서울대 국악과 창립 60주년을 맞아 유럽에 가서 기념 연주를 했습니다. 여러 일정 중에 영국의 한 대학의 음악인류학과에서 연주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계신 교수님이 한국에서 국악을 공부했고, 유럽에 국악을 알리시고 계시더군요. 연주를 하기 전 교수님께서 서울대학교 국악과 창립의 의미에 대해 소개를 해주셨었습니다. 과거에 국악인은 평생토록 자신의 분야에만 매진하는 일종의 불문율이 있었는데, 서울대학교 국악과는 모든 장르의 국악을 학생들이 골고루 배울 수 있는 최초의 교육기관입니다. 한 음악인이 자신의 전공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서울대학교 국악과의 창립 의미가 상당히 크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이러한 점을 외부인의 객관적 시각에서 짚어주시니 저 역시 다시 한 번 학교의 의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었습니다. 국악계에서 창작음악이 주목 받지 못할 때에도, 서울대학교 국악과가 주도하여 이를 만들고 지원한 바 있습니다. 그 변화를 일구어낸 것이 우리입니다. 학생 여러분께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방식을 수용하여 발전해나가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글_박지현_작곡과 이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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