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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1 20:17:04
예로부터 음악은 도제식 교육에 의해 전승되어 왔다. 획일화될 수 없고 추상적인 음악예술 특성상 가르쳐야 하는 내용이 학생마다 상이하기 때문일 테다. 이러한 전통은 현대까지 이어져, 악기와 작곡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필연적으로 개인 레슨을 받게 된다. 한편 오늘날의 레슨은 과거의 폐쇄성을 벗어나 인터넷 등을 통해서도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최근 여러 음악대학이 마스터클래스와 레슨을 녹화해 온라인상에 게시하고 있는데, 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례 없는 대형 프로젝트 <서울대 음대 레슨 노트>(이하 <레슨 노트>)도 그중 하나다. <레슨 노트>는 서울대에서 일어나는 레슨을 촬영 및 편집하여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프로젝트로, 서울대 음대의 모든 교수진이 참여한다. 프로젝트가 1/2가량 진행된 지금, 그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김성신 코디네이터와 김민영, 최민식, 편예림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Q.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A. 모두 작곡과 이론전공 출신이다. 촬영에 직접 관여하는 위치인 만큼,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야외활동을 줄이고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촬영은 세 작가가 두 요일씩 맡아 요일별로 진행한다.
Q. <레슨 노트>는 공개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주목과 기대를 모았다. 어떤 프로젝트인가?
A. <레슨 노트>는 서울대의 레슨을 소개하고 이를 영상으로 서비스한다. 현 음대 학장이신 민은기 교수님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로, 음악 전공자뿐 아니라 클래식음악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작가진은 기획 실무를 담당했는데, 클래식음악의 학문적인 성격을 유지하는 동시에 대중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많은 고민의 과정을 거쳤다. 일 년 동안 많은 영상을 빠르게 업로드해야 하기 때문에 촬영 개시 전에 방송 구성이 완성되어 있어야 했고, 파일럿 영상도 많이 찍었다. 레슨 방향을 좀 더 명확히 소개하기 위한 ‘레슨 포인트’도 이 과정에서 추가된 구성이다.
Q. 프로젝트 시작 전후의 소감이 궁금하다.
A. 큰 프로젝트인데 초반에는 업무 분장이 원활하지 않아 막막했다. 합류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역할이 커서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래도 실제 촬영에 들어가고부터는 조금 나아졌던 것 같다.(웃음)
Q. 참여자들은 어떻게 설득했나?
A. 기획 첫 단계와 파일럿 촬영을 끝낸 뒤, 민 학장님께서 각 전공 교수님들을 만나 프로젝트를 설명하셨다. 섭외는 그 후에 이루어졌는데 다행히 대체로 호의적이셨다. 안 좋은 댓글이 달리는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 반응이 있었지만 “무플보다 악플이 낫고, 그것도 다 관심”이라는 민 학장님의 설득이 통했다. 몇몇 젊은 세대 교수님들이 프로젝트를 좀 부담스러워 하시기는 했다.
Q. 레슨은 아무래도 현장성과 즉흥성이 강한 형식이라 영상화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콘티는 어떤 식으로 제작되었나?
A. 시청자들에게 곡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줬으면 좋겠다는 게 민 학장님의 바람이었다. <레슨 노트> 참여 교수님들께서 먼저 레슨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악보에 기입하시면 이를 바탕으로 콘티를 제작한다. 이 콘티가 다시 교수님들께 레슨 방향을 정하거나 세부 섹션을 나누는 가이드라인이 된다. 이미 존재하는 마스터클래스 영상과의 차별화를 위해 레슨의 현장성을 어느 정도 억누르는 조절제 역할도 한다. 물론 대략적인 틀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 촬영을 하면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작가진의 일은 사실 사전 준비보다 촬영 이후의 작업에 더 집중되어 있는데, 편집 과정에서 콘티의 의도를 전달하고 음악 전문 용어를 검수하는 일 등을 한다. 콘텐츠 제작에 있어 음악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맡았다.
Q. <레슨 노트>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A. 음악대학 학생, 특히 피아노 전공자는 협연을 하지 않는 이상 혼자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레슨 노트>에 업로드되는 300여 개의 영상을 위해 여러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협력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또, 학교 밖의 사람들에게 <레슨 노트>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개 “서울대 음대가 그런 걸 공개해?” 하고 놀라더라. 레슨은 학생과 교수만의 것인데 이를 대중에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런 편견뿐 아니라 실기 레슨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대중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서울대에 좋은 레슨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도 가치로운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Q. 프로젝트 진행 담당자로서의 개인적인 다짐이나 목표가 있었나.
A. 김민영: “좋은 전달자가 되자”는 생각을 가지고 일했다. 좀 더 신경쓰고 좀 더 공들이면 그만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법이니까.
최민식: 영상을 보면 챕터 제목이나 자막 등은 빠르게 지나가는데, 이런 사소한 걸로도 작가 셋이서 토론을 많이 한다. 올라간 영상은 영원히 남으니 오해 없이 좋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Q. ‘좋은 레슨’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레슨을 받은 경험이 있으면 알겠지만, 음악에는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모호한 부분이 많다. 그런 모호성에도 불구하고 학생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고안된 명쾌한 레슨이 좋은 레슨이라고 생각한다. 교수님과 학생의 성향이 잘 맞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활달하고 개방적인 교수님, 학구적인 교수님, 다양한 비유를 사용하는 교수님, 꼼꼼하고 세심한 교수님……. <레슨 노트>에서는 교수님들마다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각각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학생들과 만나면 시너지 효과가 발휘되곤 한다.
Q.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한다면.
A. 김민영: 촬영장 위층의 소음이나 천둥소리 때문에 촬영이 중단된 적이 있다. 뛰어난 오디오 팀과 마이크 감도 때문에 조그만 소리도 수음되는데, 촬영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편예림: 한 연주자가 시스루 치마를 입고 왔는데, 지미집 촬영 때 강한 조명에 다리가 비쳐서 검은 스타킹이 필요했다. 스타킹이 구해지지 않아 난감한 상황에 마침 내가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어서 바꿔 신은 적이 있다.
김성신: 바이올린 협주곡 레슨이었는데 반주자가 없었다. 당시 현악과 조교가 촬영장에서 급히 연락을 취했고, 피아노과의 한 선생님께서 초견으로 몇 번 연습하시곤 바로 와 주셨다. 옷차림도 촬영에 적합했던 터라 미리 준비된 연주자처럼 레슨을 진행할 수 있었다.
Q. <레슨 노트>의 시청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A. 김민영: 일반 대중이라면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집중해서, 음악도라면 내가 겪어보지 않은 다른 악기, 다른 교수님, 다른 학생의 레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집중해서 영상을 본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최민식: 비전공자에게는 학생들의 연주 부분만 들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레슨 자체는 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내용이 어렵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학생 연주를 편집한 클립이 따로 업로드되니 참고 바란다.
편예림: 전문 연주자가 되기 전에는 아무래도 연주를 공개할 기회가 많지 않다. 하지만 젊고 열정적인 학생 연주자들의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다. 충분히 수준 높은 연주이니 독려 차원에서도 연주 클립을 많이 시청해 주었으면 한다. 또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레슨 노트>가 대학 레슨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석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레슨을 통해 교수님과 의견을 나누며 자신만의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레슨이 ‘독립의 과정’일 수 있음을 느껴 보기를 권한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바란다.
글_송예진(작곡과 이론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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