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Music - SNU
    [02 현재의 소리] 퇴임 교수 인터뷰: 국악과 김우진 교수 “튼튼한 뿌리와 화려한 열매”
    SNUMUSIC 2024.08.27 12:33

2021년 1월 8일, 올해 들어 가장 추운 어느 날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교수휴게실에서 향긋한 커피 내음과 함께 김우진 교수를 만났다. 동양음악연구소장과 한국국악학회 이사장으로 지낸 국악과 김우진 교수는 한국음악학자로서 활발히 활동할 뿐만 아니라 한국음악학을 바탕으로 국악계 후학 양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의 온화한 미소와 음성에서 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음악과 함께 걸어온 삶에 대한 김우진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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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용하신 연구실을 정리하기 힘드실 것 같습니다.

사실 아직 하나도 못했답니다(웃음). 그동안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연구실에 가져다 두다 보니 짐이 점점 많아졌네요. 옛날부터 교수연구실에는 책이 많았지만, 요새는 자료가 디지털화 되고 있으니, 앞으로는 나의 세대와는 다를 것으로 생각해요. 자료 정리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음악 도서관에 없는 책은 기증했어요. 관련 자료를 연구하는 제자들에게 주기도 했고요. 상당히 많이 정리하였는데 아직도 멀었어요. 연구실이 비었다는 느낌은 없고 여전히 꽉 차 있다는 느낌이에요(웃음). 다 정리는 못 하고 짐을 놓을 장소를 마련해 차차 정리하고 마무리하려고 해요.


처음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강원도 동해시에서 태어났는데, 국민학교를 다닐 때부터 음악을 참 좋아했습니다. 성적표를 받아들면, 음악만 수이고 나머지는 전부 우 아니면 미였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나요(웃음). 아버지께서 방학동안 서울의 국립국악원이나 지금의 전통예고에서 진행되었던 음악 교사 강습에 다니시면서 국악을 접하셨습니다. 아들 중 저를 서울에 데려오셨고,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를 한번 다녀보겠냐고 소개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음악이 좋으니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 때 강원도 묵호(현 동해시는 묵호와 북평을 합쳐서 만든 시로 승격됨)는 국악이라는 것에 대한 특별한 연고도 없었고, 음악이 활성화된 동네도 아니었어요.


한국음악학자 뿐만 아니라 거문고 연주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다방면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다양한 경험이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보면, 처음의 시작은 거문고였습니다. 거문고를 전공 악기로 배웠고, 대학을 들어와 이론전공을 하며 이론의 길을 걸었어요. 중간에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에서 연주자 생활을 4년 정도 했었죠. 학교에 근무하면서 거문고를 조금 가르친 적도 있었지만, 공연 활동이나 연주 활동을 많이 하진 않았어요.
참 좋은 스승이셨던 거문고 정악의 대가 구윤국 선생님과 거문고 산조의 한갑득 선생님을 만나 거문고를 공부하였습니다. 거문고 연주는 한국음악학 전공을 하고 고악보를 다루는 데에 있어 밑바탕이 되었고 굉장한 자산이 되었어요. 관현악단에서 연주했던 경험도 공연 현장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을 갖는 데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학생들 논문 지도할 때도 결국 나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국악계의 발전을 정리하는 안목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음악대학에서 교육자로서 개인적인 사명이나 교수님의 목표가 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글쎄요, 뭐. 교수의 역할을 굳이 정리하자면 교육과 연구 두 가지로 볼 수 있죠. 결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고, 가르치면서 본인 스스로가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라는 것을 꼭 하게 됩니다. 젊었을 때부터 1년에 새로운 논문 1편을 꼭 써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그것을 실천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 와서 내가 근무한 연수와 논문 편수를 생각해보면, 이게 안 맞아요. 내가 조금 게으르게 공부했나 이런 생각을 하며 반성을 하기도 해요.
우리가 사는 환경들도 많이 변했죠. 국악에 대한 인식도, 학생들도, 국악 교육 내용도 많이 변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함께 연구하며 발전을 하게 되고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서울대학교에서 보내신 시간 중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가요?

내가 서울대학교에 근무한 것이 만 8년입니다. 만 8년 동안 서울대학교에 있으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3가지입니다. 그 기간 동안 동양음악연구소 소장으로 있었는데, 2016년도에 동양음악연구소 40주년을 맞이하여 역사를 정리하는 학술대회와 특집호를 발간하며 글을 정리하였어요. 그 다음에는 한국국악학회 이사장을 지냈는데, 한국국악학회는 2018년도에 70주년에 되었어요. 70주년을 정리한 것이죠. 그 다음에는 서울대학교 국악과가 2019년에 60년을 맞이하여 60년을 정리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학술대회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행사를 맞이하면서 국악계의 근현대사에 해당하는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국악학연구회라는 명칭으로 오랫동안 존속되어왔던 국악과 학생회 활동이 있었어요. 내가 국악과 15회인데, 국악과 60년사를 정리하면서 보니 1회 때부터 그 흐름이 있었더라고요. 내가 학생회 활동을 정리하며 느꼈던 것은 학생들의 사고가 교수들의 사고보다 조금 앞서가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죠. 고악보 복원 연주회나 창작 음악 연주회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했어요. 실내악 편성이면서도 협주곡에 해당하는 곡도 학생들이 써서 공연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창의적인 활동을 학생들 스스로가 시도했다는 것이죠. 우리 국악과의 자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한국음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오, 그거 어려운 문제이지요. 발전을 위해서 과거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수정해야 하고 미래가 정해져 있다면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데요. 과거의 잘못이라고 하면, 사실 예술에는 잘못이 없어요. 예술의 창의적인 것과 예술성만 존재할 뿐이지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래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음악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 전에 동양음악연구소에서 학술대회를 기획하면서 국악의 현대화에 대한 주제를 다룬 적 있습니다. 그런 주제를 두고 했던 생각이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국악의 현대화에 대한 주제를 논했다는 것입니다. 국악은 많이 변화했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이죠. 결국 음악의 미래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창작에 의해 가고 있는 것이지 방향을 정해서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방법을 정하고 규제하는 데에 동의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다양한 음악이 고르게 발전해 나가고, 결국은 대중과 미래의 선택에 따라 박물관 음악으로 남을지 대중과 함께할 음악으로 남을지 결정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음악학, 공연 현장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것, 제일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퇴임하신 후 앞으로의 일정과 계획 등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연구는 평생을 해 왔으니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에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 환경과 무엇보다도 공연 환경이 많이 달라져서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도 있어요. 물론, 예전부터 해오던 경향의 연속이긴 합니다만 요즈음의 공연은 저희 세대가 걸어온 방향과는 다르다고 느껴집니다. 퇴임 후에 특별히 계획한 것은 없어요. 이제 정리를 잘해야겠죠? 내가 살아온 길, 내가 연구해온 과정을 좀 정리하는 것이 가장 큰 화두라고 생각을 해요. 정리해야 할 방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몇 가지 방법을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인데,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더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은 내 짐을 정리해야 하고, 내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내가 주변에 벌여 둔 일을 정리해야겠죠. 어쩌면 그런 것을 다 정리해야겠다는 것도 다 내 부질없는 욕심이지 않을까 생각도 해요.


앞으로 국악의 미래를 위해서 국악인들에게 전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우리 후학들에게 굳이 이야기한다면, 우리 후학들이 알아서 잘할 거예요(웃음). 굳이 나의 욕심대로 이야기하자면, 예술은 예술이지만, 예술도 정직하게 해야 하고, 예술에서도 중요한 것은 가장 기초가 아닌가 싶어요. 그 기초는 결국 우리 전통 음악이 가지고 있는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고, 기초가 튼튼하면 열매를 화려하게 맺을 수가 있겠죠? 나무도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도 잘 뻗고 열매도 잘 맺을 수가 있고 꽃도 잘 피울 수가 있듯이, 우리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것도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할 때 전통적 요소를 발전시키는 것, 대중적 요소를 발전시키는 것, 모두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글_ 김사라 국악과 작곡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