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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2020년의 음악계는 코로나19의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맞아 다양한 형태의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위기에는 언제나 기회의 돌파구가 따라오듯이, 활성화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국제 교류는 물리적 거리의 제약을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 넘는 형태로 나타났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은 이미 장기 프로젝트인 텔레매틱 콘서트 개최 등으로 기술 매체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으며, 지난해에 이어 세계선도 중점학과 육성사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크게 ‘텔레매틱 콘서트’, ‘SNU Music in the World’,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세 가지 프로젝트로 나뉘어 진행되는 세계선도사업 중 이 지면에서는 ‘SNU Music in the World’를 주제로 진행된 괄목할 만한 시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Collective Resonance
“Collective Resonance”는 서울대학교와 태국의 PGVIM(Princess Galyani Vadhana Institute of Music), 호주의 SCM(Sydney Conservatorium of Music)을 잇는 온라인 워크숍 행사로서, 한국 현지 시간을 기준으로 2020년 6월 28일 오후 6시(방콕 오후 4시, 시드니 오후 7시)에 열렸다. 세 국가의 학생들은 각자의 국가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Zoom 화상전화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표자를 제외한 참가자들 또한 온라인으로 자유롭게 접속하였으며, 워크숍의 모든 과정은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중계됨으로써 가상의 참여공간을 확장하였다.
더불어 본 워크숍은 “Collective Resonance” Film Making Project를 통해 약 9분 정도의 단편영화로 재탄생하였다. 워크숍의 오프닝에 연주되었던 워맥(Donald Reid Womack)의 《Intertwined》가 주제 음악으로 등장하고 스튜디오 촬영 영상과 온라인 스트리밍의 화면 및 음향들이 엮인 이 영상은 현장과 가상공간을 넘나드는 ‘interwined’(얽힘)의 이미지를 재현해낸다. 본 영상은 이탈리아 살레르노 국제 영화제와 브라질 리오 웹페스트에 공식 초청되고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단편영화제, 미국 LA 필름 페스티벌의 세미 파이널에 오르는 등 세계 각국에서 주목을 받았다.
(2) 《예불》(LYE-BUHL)
SNU Music in the World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예불》은 변화하는 연주 환경이 던진 질문에 대한 서울대학교의 대답이자 동시에 2020년에 별세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명예교수 故강석희(1934~2020)에 대한 추모로서 진행되었다. 1968년에 초연된 고인의 창작곡 《예불》이 팬데믹이라는 상황에 맞춘 비대면 프로젝트를 통해 53년 만에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된 것이다.
불교음악의 범패와 한국 전통의 다양한 소리들을 소재로 창작한 《예불》은 본래 30개의 타악기와 남성합창, 독창으로 이루어진 대편성의 작품이지만, 본 프로젝트에서는 가상악기와 국악기 샘플링, 성악전공과 국악전공의 합창 녹음이 합쳐진 비대면 편성으로 탈바꿈하였다. 더불어 김상만이 감독하고 뮤지션 ‘이날치’의 보컬로 잘 알려진 안이호(판소리, 박사과정)가 독창 및 출연한 영상이 더해지면서, 본 작품은 한 편의 감각적인 뮤직비디오로 완성되었다.
《예불》은 2020년 2월 17일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유튜브 채널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
글_ 조형주 음악과 박사과정
(3) Experimental Academy Disklavier
지난 1월 5일에서 7일, 49동 예술관에서는 “Experimental Academy Disklavier”가 사흘간 개최되었다. 서울대학교와 UCLA가 공동으로 진행한 이번 행사에서는 총 4회의 마스터클래스와 연주회가 열렸다. 특히 이번 행사 기간 동안에는 각 학교에 원격 제어 피아노 디스클라비어가 설치되어,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서 동시에 행사가 진행될 수 있었다.
1월 5일 오전 9시, 로스앤젤레스 시간으로는 1월 4일 오후4시에 UCLA의 팔릭(Inna Faliks) 교수의 마스터클래스로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서울대학교 학부에 재학 중인 임지민은 서울대 콘서트홀에 준비된 디스클라비어로 쇼팽(F. Chopin)의 《뱃노래》(Barcarolle)를 연주했고, 이는 미국 UCLA에 준비된 디스클라비어로 동시에 연주되었다. 그동안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불가피하게 줌이나 스카이프 등을 활용해 원격 레슨을 진행할 때,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는 소리의 음질이 저하되거나 지연되는 등의 문제로 인해 비대면 레슨의 한계를 체감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사용된 디스클라비어는 디지털화된 소리가 아닌 어쿠스틱 사운드를 전달하여, 지구 반대편에서 전송된 연주가 거의 완벽히 재현되었다.
한 시간가량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된 후, 서울대학교 주희성 교수의 마스터클래스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미국 UCLA의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스턴(Valerie Stern) 학생이 베토벤의 《Sonata No. 24 in F# Major, Op. 78》을 연주했다. 이번에도 디스클라비어를 통해 미국에 있는 스턴 학생의 연주는 서울대에 그대로 구현되었고, 주희성 교수 역시 직접 연주하여 학생의 이해도를 높였으며, 레슨을 통해 즉각 변화하는 학생의 모습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날에는 팔릭 교수의 마스터클래스가 진행되었으며, 이날은 서울대의 이건우 학생이 라벨(M. Ravel)의 《밤의 가스파르》(Garspard de la Nuit) 중 “스카르보”(Scarbo)를 연주했다. 뒤이어 열린 서울대학교 최희연 교수의 마스터클래스에서는 UCLA의 탱-왕(Sean Tang-Wang) 학생이 슈베르트(F. Schubert)의 《방랑자 판타지》(Wanderer fantasy)를 연주했다. 마지막 날인 1월 7일에는 “Online Exchange Concert for Disklavier” 연주회가 열렸으며, 연주회에서는 마스터클래스에서 연주했던 4명의 학생과 서울대학교의 아비람(Aviram Reichert) 교수, UCLA의 팔릭 교수가 무대에 올랐다. 이날 많은 학생들은 디스클라비어를 보며 악기 스스로 건반과 페달을 움직여 연주하는 듯한 모습에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매우 세밀하고 정교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에 더욱 감탄하였다.
이번 행사는 당초 아시아, 유럽, 미국 대륙을 모두 아우르는 페스티벌로 기획되었으나, 런던의 길드홀음악연극학교(Guildhall School of Music and Drama)가 런던의 셧다운으로 인해 워크숍 직전에 불참하였다. 그럼에도 서울대학교와 UCLA의 학생들과 교수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이번 온라인 행사에 참가하여 자리를 빛내주었다. 특히 야마하 글로벌 본사의 도움으로 콘서트홀에 설치된 야마하사의 디스클라비어(Disklavier) DC3X 모델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대한민국 서울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주최, 주관으로 개최된 “Experimental Academy Disklavier”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여 국제 피아노 아카데미를 기획, 추진함으로써 세계 명문 학교들과 교류하고 국제적인 교류를 이어간 뜻깊은 시간이었다. 해당 마스터클래스와 연주는 모두 영상으로 녹화되었으며, 추후 각 학교를 통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송출될 예정이다.
글_ 최현호 음악과 박사과정